인터뷰

김현정·이성원 — 취향을 수확하다

부추와 당귀, 허브와 열매채소를 형태와 색, 질감으로 큐레이션한 두 정원 작가.

붉게 익은 고추와 보랏빛 꽃이 함께 자라는 플랜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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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녹색 취향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서 정원이 출발했다. 소비하면서 잊고 사는 식물의 원형적 아름다움을 되찾기 위해, 작물과 허브, 열매채소를 형태와 색, 질감, 높낮이에 따라 큐레이션해 하나의 정원 경관으로 엮었다. 텃밭이 아니라 정원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설계의 뜻이다.

보랏빛 라벤더와 흰 꽃이 어우러진 화단
보랏빛 라벤더와 흰 꽃이 어우러진 화단. 허브와 작물도 꽃을 피우면 정원의 색이 된다.
큰 나무 두 그루 사이에 통목 테이블이 놓인 정원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위에서 내려다본 정원. 큰 나무 두 그루 사이에 통목 테이블과 벤치가 놓이고, 울타리가 정원의 경계를 두른다.
통목 상판 위에 허브를 펼쳐 둔 테이블과 목재 벤치, 뒤로 유리 덮개 플랜터
통목 상판 위에 수확한 허브를 펼쳐 둔 테이블. 상판 아래는 스테인리스 다리가 받치고, 벤치도 나무로 짠다. 뒤편에는 유리 덮개를 단 플랜터가 줄지어 있다.
덮개를 열어 둔 플랜터 안에서 허브와 작물이 자라는 모습
덮개를 열어 둔 플랜터 안에서 허브와 작물이 자란다. 꽃이 지고 피고, 그 자리에 또 다른 식물이 채워지는 정원이다.

I. 서울의 녹색 취향

질문에서 시작한 정원이다. 공모 주제는 '서울 그린 컬처, 시민의 정원'이었고, 두 사람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갔다. 서울의 녹색 취향은 무엇일까. 서울에는 농산물이 나는 들판이 없다. 대신 꽃을 사고 제철 채소와 허브를 고르며 저마다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만들어 가는 도시다. 김현정 작가는 그 고르는 행위를 이 도시가 식물을 소비하는 방식이자 서울의 녹색 취향으로 읽었다.

“일상에서 식물을 많이 소비하면서도 정작 그 원형적인 아름다움은 자주 잊고 삽니다.”
— 김현정, 정원 작가

식재료로 쓰는 부추는 예쁜 꽃을 피우고, 쌈채소인 당귀도 꽃이 피면 하나의 경관이 된다. 작물과 허브, 열매채소를 선별해 큐레이션하면 원형의 아름다움이 모여 하나의 정원 경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가장 경계한 것은 흔한 텃밭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단순히 재배하는 공간이 아니라 예쁜 정원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작물과 허브, 열매채소, 초화류를 형태와 색, 질감에 따라 큐레이션하고 높낮이까지 따져 배치했다. 정원 이름의 '그린 큐레이션'은 그 과정을, 부제 '취향의 수확'은 방문객이 원형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 취향에 맞는 것을 수확해 간다는 뜻을 담았다.

II. 자리를 앉히는 일

대상지는 원래 더 바깥쪽이었다. 이들은 정원을 안쪽으로 들였다. 이성원 작가에게 매헌시민의숲은 오래된 시간이 주는 압도감 속에서도 큰 나무들 사이에서 큰 위로를 느끼는 곳이었다. 예전에도 자주 왔던 곳이었다.

“첫인상이 정말 아늑하고 편안해서, 여기에 뭔가 손을 대는 게 부담스러웠습니다.”
— 이성원, 정원 작가

톤을 최대한 죽이고 자연스러운 소재와 목재를 많이 쓴 이유다. 따뜻한 목재로 이 공간을 좀 더 따뜻하고 부드럽게 앉히고 싶었다.

테이블의 위치도 그렇게 정해졌다. 원래는 입구 쪽에 두어 '여기가 우리 정원'이라는 것을 바로 보여 주려 했다. 하지만 대상지를 받아 보니 양쪽에 큰 플라타너스가, 맞은편에 좀작살나무 숲이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사이에 테이블을 놓아 공간이 한 번 더 감싸지는 효과를 전략적으로 택했다.

큰 나무와 울타리 사이에 놓인 테이블과 비스듬히 열린 유리 덮개 플랜터
잔디마당을 내려다본 정원. 큰 나무와 울타리 사이에 테이블이 놓이고, 앞쪽으로 유리 덮개 플랜터가 비스듬히 열려 있다.

동선의 시나리오는 대중교통을 기준으로 짰다. 신분당선과 광역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동선에서 우측 출입구로 들어올 때, 정원이 한 번에 노출되는 것이 싫어 안쪽으로 넣은 것이다. 메인 출입구에서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되 완전히 가려지지도 않는, 옛 정자처럼 희끗희끗 보이는 정원을 원했다. 그래서 이 정원은 출입구와 입구가 다르다. 출입구는 원형 로터리 쪽으로 뺐지만, 정원의 입구는 사실 다른 쪽에 있다.

III. 통목과 스테인리스

각 요소와 플랜터 하나하나는 어디서 본 듯하지만 본 적 없는 조합으로 시너지를 내고자 했다. 그중 가장 고집한 것은 테이블 상판이다. 루버 형식으로 조각내 쉽게 가는 방법이 있었지만 통목을 택했다. 통목이 주는 압도감을 원했고, 가장 큰 이 테이블이 중심을 잡고 주변의 여러 요소가 보조하는 레이아웃을 만들었다.

큰 나무 아래 통목 테이블과 벤치, 뒤로 줄지어 선 유리 덮개 플랜터
큰 나무 아래 놓인 통목 테이블과 벤치. 상판 아래로 스테인리스 다리가 보이고, 뒤편에는 유리 덮개 플랜터가 줄지어 있다.

철제는 거의 스테인리스를 썼다. 예산을 더 들이더라도 안전을 확보하고 녹이 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플랜터에는 가스 실린더를 달거나 나무 발을 이중으로 고정해 어린아이나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했다. 나무와 철을 나누어 쓰는 방식은 농기구에서 착안했다. 낫처럼 사람의 손이 닿는 부분은 따뜻한 목재로, 지지하거나 기능하는 부분은 철로. 정원의 가구가 농기구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정원의 주제는 식물에서 가구까지 일관된다.

유리 덮개를 열고 노란 열매를 따는 모습
유리 덮개를 열고 노란 열매를 따는 모습. 덮개 오른쪽에 가스 실린더가 달려 있다.
유리 덮개를 열어 올리는 손과 안쪽의 보랏빛 꽃
유리 덮개를 열어 올리는 손. 안쪽에는 보랏빛 꽃이 피어 있다.

예산 때문에 정말 좋은 목재는 상판에만 욕심을 냈다. 나머지는 그만큼의 내구성은 없지만 밝은 목재를 썼다.

통목 테이블 위에 수확한 허브를 펼쳐 다듬는 모습
통목 테이블 위에 수확한 허브를 펼쳐 다듬는 모습. 뒤편으로 플랜터가 줄지어 서 있다.
“처음엔 때가 끼고 지저분해 보일 수 있지만, 매헌시민의숲처럼 나무도 시간과 함께 나이 들어가길 바랐습니다.”
— 이성원

IV. 완성되지 않는 정원

정원 옆 원형 로터리는 지역 축제와 연계해 함께 쓰자는 생각으로 열어 둔 자리다. 김현정 작가는 마르쉐에 처음 갔을 때 잎이 달린 당근과 줄기째 놓인 비트를 보고 그것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경관이라고 느꼈다. 이번 공모의 핵심이 시민과 함께하는 것이었기에 원형 광장과 맞닿은 자리에 정원을 두었다. 광장에서 프로그램이나 페스타, 마르쉐 같은 채소 시장이 열리면 정원과 이어질 수 있고, 시민정원사가 함께 수확한 작물을 시장에 나가 파는 장면까지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

시민정원사 여섯 분이 조성에 함께했다. 조성하면서 애정이 생겨 거의 매일 정원을 찾았고, 올 때마다 또 다른 시민정원사를 모시고 왔다. 그중 한 분은 꽃차와 허브티를 전문으로 하는 티테라피스트였다. 정원을 둘러보더니 레몬버베나가 있다며 첫잎으로 차를 내면 향이 좋다고 했고, 한 바퀴 돌고 나서는 가을에 여기서 국화차를 마시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정원에는 국화도 아스타류도 없다. 김현정 작가는 가을 보식 때 국화를 심어 그분이 말한 다도 프로그램이 열리길 기대한다.

보랏빛 열매가 익어 가는 가지
보랏빛 열매가 익어 가는 가지. 정원의 계절은 이렇게 한 켠에서 먼저 바뀐다.
“이런 에피소드가 저희가 생각했던 정원의 모습입니다. 완성된 정원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꽃이 지고 피고, 그 자리에 또 다른 식물이 채워지니까요.”
— 김현정

시민정원사와 시민들이 와서 의견을 하나씩 건네면, 그것이 다음 계절의 풍경으로, 또 다른 식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원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느냐고 물었다. 이성원 작가의 답은 짧았다.

잔디마당의 목재 벤치에 나란히 앉은 김현정, 이성원 작가
잔디마당의 목재 벤치에 나란히 앉은 김현정, 이성원 작가. 뒤로 통목 테이블과 유리 덮개 플랜터가 보인다.
“그냥 원래 있었던 정원처럼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어요.”
— 이성원

딱 거기까지라고 그는 덧붙였다. 더 보탤 말이 없었다. 새것이 오래된 숲 안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한 문장에 다 있었다.

밭이 아니라 정원으로 보이게 하는 일은, 결국 늘 보던 것을 다시 보게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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