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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1, 2026

앉을 자리가 도시의 가치를 정한다

도시가 시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지표가 벤치입니다.

by 
나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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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짓는 것 중에 가장 싼 것이 무엇일까요. 벤치입니다. 다리나 지하철에 비하면 값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시가 시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도 벤치입니다.

앉을 자리가 없는 광장은 광장이 아닙니다

1961년 뉴욕시는 건물주에게 흥미로운 거래를 제안했습니다. 건물 앞에 시민이 쓸 수 있는 광장을 만들면 층수를 더 올릴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건물주들은 기꺼이 응했습니다. 그 결과 맨해튼에 수백 개의 광장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도 그 광장을 쓰지 않았습니다.

사회학자 윌리엄 화이트는 카메라를 들고 이 광장들을 몇 년간 관찰했습니다. 그가 찾아낸 답은 허탈할 정도로 단순했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광장과 안 모이는 광장의 차이는 조각상도, 분수도, 나무 그늘도 아니었습니다. 앉을 자리였습니다. 앉을 곳이 많은 광장에는 사람이 있었고, 없는 광장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사람들은 앉을 수 있는 곳에 앉는다.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재보지 않았던 사실입니다.

이 연구는 법을 바꿨습니다. 1975년 뉴욕시는 조례를 고쳐 광장 면적에 비례해 일정 길이 이상의 앉을 자리를 의무화했습니다. 건물주 입장에서 벤치는 관리비만 나가는 골칫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시 입장에서는 이 벤치가 있어야 층수를 더 준 대가를 시민이 실제로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벤치는 그때부터 공공 공간의 최소 단위가 되었습니다. 앉을 수 없는 광장은 광장이 아니라 그냥 넓은 바닥입니다.

움직이는 의자는 왜 도둑맞지 않을까요

파리 뤽상부르 정원에 가면 초록색 철제 의자가 수천 개 흩어져 있습니다. 고정돼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의자를 끌고 가 연못가에 놓기도 하고, 친구와 마주 보게 돌려놓기도 하고, 혼자 나무 그늘로 옮기기도 합니다. 이 의자는 1923년부터 이 정원에 있었고, 지금은 아예 "뤽상부르 의자"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팔리는 상품이 되었습니다.

이 의자의 경제학은 뉴욕에서 증명됐습니다. 1980년대 맨해튼 한복판의 브라이언트 파크는 마약상이 모이는 곳이라 "바늘 공원"이라 불렸습니다. 1992년 재개장하면서 공원 관리 측은 화이트의 조언을 받아 고정 벤치 대신 움직이는 의자 수천 개를 들여놓았습니다. 반대가 거셌습니다. 하룻밤이면 다 없어질 거라는 것이었지요.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도난은 거의 없었고, 공원은 몇 년 만에 뉴욕에서 가장 안전한 공공 공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물론 의자만으로 된 일은 아닙니다. 조명을 바꾸고, 시야를 가리던 울타리를 걷어내고, 주변 건물주들이 돈을 모아 상시 관리 조직을 꾸렸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 중 사람들이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의자였습니다. 주변 사무실 임대료가 눈에 띄게 올랐고, 그 건물주들이 낸 분담금이 다시 공원 관리비가 되었습니다.

왜 도둑맞지 않았을까요. 의자를 옮길 수 있다는 것은 그 자리를 자기 뜻대로 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정한 자리를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고정된 벤치는 도시가 정한 자리에 시민을 앉히는 것이고, 움직이는 의자는 시민이 자기 자리를 정하게 두는 것입니다. 이 차이가 안전과 임대료로 돌아옵니다. 다시 말해 벤치의 가치는 재료값이 아니라, 그 벤치가 시민에게 얼마나 많은 결정권을 주느냐로 정해집니다.

파리 뤽상부르그 정원(ⓒAlina Rossoshanska)

앉지 못하게 만드는 벤치의 비용

반대 방향도 있습니다. 2012년 런던 캠든 구는 새로운 벤치를 설치했습니다. 콘크리트 덩어리에 각도를 줘서 눕지 못하게,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못하게, 물건을 올려두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름도 "캠든 벤치"였습니다. 설계 목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못 하게 하는가"였다는 점을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낸 벤치는 드뭅니다.

이런 벤치는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가운데 팔걸이를 세워 눕지 못하게 한 벤치, 앉는 면을 좁혀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한 벤치, 아예 기대기만 가능한 경사판. 이걸 적대적 건축이라고 부릅니다. 목적은 하나입니다. 노숙인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단기적으로는 계산이 맞아 보입니다. 민원이 줄고 관리비가 줄어드니까요. 그런데 이 벤치의 진짜 비용은 다른 곳에서 청구됩니다. 눕지 못하는 벤치에는 노인도 오래 앉지 못합니다. 아이를 눕혀 재우던 부모도, 다리를 뻗고 싶은 임산부도 떠납니다. 도시가 특정한 사람을 밀어내려고 만든 장치는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조금씩 밀어냅니다. 그리고 시민은 그 벤치를 볼 때마다 이 도시가 자기를 손님이 아니라 관리 대상으로 본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 확인이 쌓이면 공공 공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집니다. 신뢰는 한번 무너지면 벤치 값의 몇백 배를 들여도 다시 사기 어렵습니다.

도시가 시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면

정원으로 가보겠습니다. 영국의 건축가 에드윈 루티언스는 1900년 전후 정원 설계가 거트루드 지킬과 함께 수십 개의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지킬이 꽃을 심고 루티언스가 구조를 잡았지요. 그때 루티언스가 정원에 놓으려고 설계한 벤치 하나가 있습니다. 등받이가 부드럽게 휘어 올라간 흰 목재 벤치입니다. 이 벤치는 지금도 "루티언스 벤치"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고 팔립니다. 백 년 넘게 살아남은 디자인입니다.

왜 팔릴까요. 이 벤치는 어디에 놓느냐가 함께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루티언스와 지킬의 정원에서 벤치는 흔히 긴 화단의 끝, 걷다가 뒤돌아보면 정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놓였습니다. 벤치는 앉는 도구가 아니라 시선을 멈추게 하는 장치였습니다. 정원은 걷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이 벤치를 사는 사람은 목재를 사는 것이 아니라, 정원에 "머무는 자리"를 하나 만드는 겁니다.

영국의 공원에는 이 원리가 더 직접적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런던의 왕립 공원들은 시민이 돈을 내고 벤치를 기증하도록 합니다. 세상을 떠난 가족의 이름과 짧은 문장을 새긴 명판을 달 수 있습니다. 하이드파크의 벤치 하나를 기증하는 데 1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1천8백만 원가량을 요구합니다. 벤치 값의 몇 배가 넘는 금액인데도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줄을 서고, 런던의 몇몇 구청 공원은 아예 신청을 닫아둔 상태입니다. 사람들은 왜 공원에 벤치를 사서 놓을까요. 그 벤치에 앉는 모르는 사람이 자기 가족의 이름을 읽어주기 때문입니다. 벤치가 기억을 공공 공간에 심는 장치가 된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놓인 벤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람들이 지킵니다.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 물건은 훼손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정원과 공공 공간이 만나는 지점을 봅니다. 정원사는 압니다. 정원은 꽃을 심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머무는 곳이고, 머무름은 앉을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요. 루티언스가 백 년 전에 알았던 것을 도시는 이제야 배우고 있습니다.

벤치는 도시가 짓는 가장 싼 시설이지만, 그 도시가 시민을 어떻게 보는지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지표입니다. 앉을 자리가 있어야 광장이 됩니다. 시민이 자리를 정하게 두면 도시는 안전해지고 값이 오릅니다. 특정한 사람을 쫓아내려고 만든 벤치는 결국 모든 사람을 쫓아냅니다. 그리고 정원은 이 모든 것을 백 년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떤 도시가 시민을 존중하는지 알고 싶다면 정책까지 들춰서 볼 필요가 없습니다. 벤치를 보면 됩니다. 몇 개나 있는지, 누울 수 있는지, 옮길 수 있는지,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지. 그 답이 그 도시의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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