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September 11, 2026

AI 시대, 조경가로 살아남기

AI가 도면을 몇 초 만에 그려주는 시대에, 조경가는 대체 뭘 하는 사람일까. 나무 한 그루를 심은 이유를 묻는 질문 앞에서 답이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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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초 만에 정원 하나가 완성됩니다.

어느 설계사무소의 신입 조경가가 대지 조건과 예산을 AI에 입력했습니다. 클라이언트 미팅을 앞두고서였습니다. 화면에는 식재 배치도와 동선 계획, 개략 견적까지 담긴 안이 떠 있습니다. 그대로 프린트해 회의실로 들어갑니다. 클라이언트는 마음에 들어 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이 나무는 왜 여기에 심었나요?"

대답이 없습니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그 안을 만든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는 셈입니다. AI는 그림을 그렸을 뿐,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아니라 책임

조경가가 다루는 건 정원만이 아닙니다. 공원과 광장, 하천과 캠퍼스, 도시의 크고 작은 오픈스페이스까지, 땅에 관한 거의 모든 결정이 이 직업의 몫입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장면은 그중 가장 작고 구체적인 단위일 뿐입니다. 다루는 대상의 규모는 저마다 달라도, 그 앞에서 마주하는 질문은 같습니다. 이 나무는, 이 광장은, 이 하천은 왜 이런 모습이 됐는가.

조경 업계는 지금 이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2026년 조경 전문지 Landscape Architecture Magazine의 취재에 따르면 실무에 AI를 쓴다는 응답은 43.4%, 쓰지 않는다는 응답은 56.6%였습니다. 정확히 반으로 갈린 숫자입니다. 2025년 IFLA·ASLA·CSLA의 공동 조사도 비슷한 그림을 보여줬습니다. AI는 배경 조사와 초안 작성에 몰려 있었고, 75%가 효율은 늘었다고 답하면서도 75%는 책임과 거버넌스 문제를 걱정했습니다. 효율은 체감하지만, 그 대가가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ASLA는 2025년 AI 정책 성명에서 이 불안에 답을 내놓았습니다. AI가 아무리 정밀한 입력값을 받아도 맥락과 윤리, 미학, 이해당사자의 가치를 온전히 해석할 능력은 아직 없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AI는 도구일 뿐, 인간의 판단과 창의성, 전문가로서의 책임을 대신할 수 없다고.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단어는 판단이나 창의성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언젠가 AI는 그림자의 방향도, 지역 주민의 의견도, 시공 여건까지도 계산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은 그렇게 움직여왔으니, 크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계산해내는 것과 책임지는 것은 층위가 다른 일입니다. 계산은 정보를 내놓지만, 그 정보를 근거로 나무를 옮기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책임은 결국 거기 서 있던 사람의 몫으로 남습니다. 능력은 따라잡힐 수 있어도, 책임은 넘겨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아시아의 오랜 조경 전통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배산임수는 좌표로 계산되는 공식이 아니었습니다. 그 땅에 실제로 서서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본 사람만이 감각으로 확인하고, 그 판단을 자기 이름으로 남길 수 있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소쇄원

책임은,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일

책임을 진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결과가 완벽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결과가 왜 그런 모습이 됐는지, 끝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2026년, Chaos와 Architizer가 함께 발표한 건축 AI 실태 보고서에서 Flashcube Labs의 코스티카 랄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에 백 개의 안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되짚어볼 시간이 없다면 그건 소음을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HOK의 설계 총괄 폴 해리슨은 더 직설적으로 경고했습니다. AI의 가장 위험한 쓰임은, 설계자가 자신의 판단을 돌아보는 시간 자체를 줄여버리는 순간이라고 했습니다. 결과물이 그럴듯할수록, 그것을 의심하는 습관은 옅어집니다.

옛 도공들은 가마에서 막 나온 그릇을 곧바로 내놓지 않았습니다. 손으로 두드려보고, 빛에 비춰보고, 미세한 균열을 찾아낸 뒤에야 세상에 내보냈습니다. 완성도가 높아 보이는 그릇일수록 더 꼼꼼히 두드려봐야 한다는 걸, 오랜 경험이 그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책임진다는 건 이 두드림과 같습니다. 매끈해 보이는 결과물일수록 한 번 더 의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균열을 굳이 메우지 않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 조경가가 옛 담장의 갈라진 틈을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다고 해봅시다. 이 땅이 지나온 시간을 보여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시공 중에 예상치 못한 암반이 나와 길이 휘어진 적도 있습니다.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지만, 그 휘어진 길은 나중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산책로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의도한 불완전함이고, 하나는 그러지 않은 불완전함입니다.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둘 다 사람이 그 자리에서 보고, 판단하고, 자기 이름으로 남긴 결정이라는 것. AI의 오류에는 대개 이게 없습니다. 그저 계산이 어긋난 것뿐, 그 뒤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옛 정원에도 이 감각은 낯설지 않습니다. 담양의 소쇄원을 지은 양산보는 계곡물을 매끈한 연못에 가두지 않았습니다. 담장 아래 오곡문을 내어, 계류가 담장을 그대로 통과해 흐르게 두었습니다. 배치도 대칭이 아니라 계곡의 굴곡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자연을 고쳐 세우는 대신 끌어안은 결정이었고, 그 결정에는 양산보라는 이름이 남았습니다.

조경가가 지는 책임은 자연을 완벽하게 다듬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어긋남과 나란히 걸어가며, 그 어긋남까지 자기 이름으로 설명할 수 있는 데 있습니다. 이런 결정이 쌓이면 사람들은 그 정원을 보고 알아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건 그 사람 정원 같다고. 로고도 서명도 아닌, 책임의 흔적이 만들어낸 무늬입니다.

책임은 현장에서만 진다

처음의 장면으로 돌아갑니다. 신입 조경가가 AI가 만든 안을 들고 회의실에 들어갑니다. 이번엔 조금 다르게 그려봅니다.

그는 안을 그대로 프린트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대지로 다시 나갔습니다. 오전과 오후, 볕이 어느 쪽에서 들어오는지 손으로 가려보았습니다. 도면 위의 나무 한 그루가 실은 이웃집 담장 그림자에 하루의 절반을 뺏긴다는 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담장 너머에서 그 집 어르신과 몇 마디를 나눴습니다. 겨울이면 그 자리에 눈이 가장 늦게 녹는다는 것, 여름 저녁이면 아이들이 그 그늘 아래서 논다는 것. 그는 나무의 위치를 옮기고, 왜 옮겼는지 적어두었습니다.

회의실에서 같은 질문이 나왔습니다. "이 나무는 왜 여기에 심었나요?" 이번엔 대답이 있었습니다. 길지 않은 대답이었습니다. 다만 그 안에는 그가 직접 서서 확인한 오후의 그림자와, 담장 너머에서 들은 몇 마디, 그리고 그가 그 결정에 걸어둔 자기 이름이 들어 있었습니다.

AI는 며칠 걸리던 초안 작업을 몇 초로 줄여줬습니다. 거기까지가 AI가 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남은 며칠을 대지로 다시 나가고, 그림자를 손으로 가려보고, 담장 너머의 사람과 몇 마디를 나누는 데 쓴 것은 사람이 한 일이었습니다. 살아남는 조경가와 사라지는 조경가는 여기서 갈릴 것입니다. 몇 초 만에 나온 첫 안을 그대로 프린트하느냐, 그걸 들고 한 번 더 현장으로 나가느냐.

책임은 자격증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계산에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땅을 살피고 사람을 만난 시간에서 나옵니다. AI 시대에 조경가가 살아남는 법은 결국 여기로 돌아옵니다.

정원은 몇 초 만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이름을 걸 수 있는 시간만큼, 정원은 자랍니다.

담장 아래로 물길을 그대로 흘려보내기로 했던 양산보가 지금 우리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면, 아마 이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이 땅에 서 있어 본 적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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