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피트 아우돌프의 자연주의 정원, 공론장에 오른 '한계와 반론'

노엘 킹스버리도 동의한 아우돌프식 자연주의 정원의 한계. 봄철 공백·수직 구조·유지관리 논쟁과 루리 가든·RHS 위슬리의 보완 시도.

by 
나창호
SHARE

봄이면 훤히 드러나는 맨땅, 키 큰 나무 없이 평면으로 펼쳐진 경관, 생각보다 무거운 유지관리 부담까지.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가 이끌어온 자연주의 식재의 약점을 두고 해외 정원계에서 공개 논의가 오가고 있다. 아우돌프와 오랫동안 함께 책을 써온 노엘 킹스버리(Noel Kingsbury)도 의견을 보탰다. 한편에서는 아우돌프가 현대 정원에 남긴 성취를 되짚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현장에서는 이미 그 한계를 보완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논의의 발단은 2026년 10월 13일 무렵 인스타그램의 한 정원 계정에 올라온 '아우돌프 스타일 정원의 문제'라는 글이다. 글쓴이는 아우돌프가 그래스류와 시드헤드(마른 꽃대와 씨방), 식물의 움직임과 계절감을 대하는 정원계의 시선을 바꿔놓았다는 점을 먼저 인정했다. 다만 그의 정원은 계절의 흐름과 바람결, 식물의 질감, 시들어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여름과 가을에는 빼어나도 사계절 내내 볼거리를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짚었다. 이 글에는 10월 21일 기준 좋아요 1,793개와 댓글 230개가 달렸다.

킹스버리의 진단

댓글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노엘 킹스버리의 글이었다. 그는 아우돌프를 영어권에 처음 알린 주역으로, 2013년 출간된 『Planting: A New Perspective』를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아우돌프와 함께 썼다. 킹스버리는 원글에 동의하면서, 아우돌프의 정원이 늦여름부터 가을까지는 빼어나고 봄철 구근 식재도 훌륭하지만 정작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는 힘이 빠진다고 짚었다. 이 시기에 피는 제라늄류 같은 식물은 대체로 공간의 뼈대를 잡아주는 힘, 즉 구조감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우돌프가 초창기에 영향을 받은 민 라위스(Mien Ruys)식 정형 전정을 더는 쓰지 않는 점도 아쉬워했다. 20세기 네덜란드 정원 설계를 이끈 라위스는 수목을 기하학적 형태로 반듯하게 다듬어 현대 정원의 조형 요소로 정착시킨 인물이다.

킹스버리는 대안의 실마리로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High Line)을 꼽았다. 아우돌프의 다른 작업과 달리 이곳에서는 교목·관목 같은 나무와 숙근초(여러해살이풀)를 섞어 심었기 때문이다. 그는 식재 폭이 2~3m로 좁은 물리적 여건 때문에 이런 혼식을 택했을 것으로 보면서, 목본과 초본을 아우르는 방식을 다른 공간에서도 더 자주 시도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는 그가 오랫동안 견지해 온 관점이기도 하다. 그는 『Planting: A New Perspective』에서도 수명이 긴 숙근초와 목본 식물을 함께 쓰는 방식을 아우돌프와 자신이 늘 지지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뉴욕 하이라인 15번가 구간. 산책로 양옆으로 관목과 소교목이 그래스류, 숙근초와 함께 심겨 있다
미국 뉴욕 하이라인 15번가 구간. 좁은 식재지에 관목과 소교목이 그래스류, 숙근초와 함께 심겼다. 2023년 10월 1일 촬영. 사진=Jakub Hałun / Wikimedia Commons (CC BY 4.0)

현장에서 짚어낸 한계

다른 댓글의 지적은 크게 세 갈래로 모인다. 첫째는 봄철의 경관 공백이다. 이는 관리 방식과 맞물려 있다. 미국 시카고 루리 가든(Lurie Garden)의 정원사들은 늦겨울이나 이른 봄에 예초기로 묵은 줄기와 잎을 한꺼번에 베어내고, 그 잔해를 바닥에 그대로 깔아둘 뿐 따로 멀칭을 하지 않는다. 새순이 올라오기 전까지 흙바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유다. 실제로 4월에 영국 하우저 앤드 워스 서머싯(Hauser & Wirth Somerset)을 찾은 한 방문객은 정원에 색도 형태도 없어 밋밋했다는 후기를 남겼다.

둘째는 수직 구조의 부재다. 키 큰 교목이 없으니 그늘을 드리우거나 바람을 막아주는 기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아우돌프는 2014년 9월 문을 연 하우저 앤드 워스 서머싯의 아우돌프 필드(Oudolf Field)에서 화단 사이에 교목이나 관목을 두지 않고, 숙근초만으로 넓은 면적을 높이차 없는 단일 층위로 채웠다.

셋째는 유지관리 부담이다. 북미 대초원을 본뜬 프레리(Prairie) 식재가 손이 덜 가는 저관리형이라는 통념은 현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많았다. 아우돌프 필드의 기록도 이를 뒷받침한다. 영국 정원 잡지 『가든스 일러스트레이티드(Gardens Illustrated)』의 취재 기사에 따르면, 이곳에 심긴 2만 6천 본의 식물이 특정 종에 밀리지 않고 군락의 균형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아우돌프 스스로도 자신의 정원이 제 모습을 유지하려면 숙련된 정원사가 꼭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 여기에 넓은 부지를 전제로 한 방식이어서 작은 정원에는 그대로 옮기기 어렵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옹호하는 목소리

반론 역시 비판만큼 길고 구체적이었다. 논쟁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댓글 작성자는 "전혀 논란거리가 아닌 일을 두고 누군가 억지로 논란을 만들려는 것 같다"고 썼다. 그는 조경과 가드닝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며, 피트 아우돌프와 톰 스튜어트-스미스(Tom Stuart-Smith) 같은 정원사를 위대한 예술가로 꼽았다. 그들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일이 가슴 뛴다는 것이다.

그는 정원을 실험적인 캔버스에 빗댔다. 정원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따라 바뀔 뿐 아니라 기후 변화에 맞춰 적응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화가들의 관계를 예로 들었다. 피카소는 세잔을 비판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아버지(Papa)'라 부르며 그의 화풍을 변형해 발전시켰다는 설명이다. 그는 시드헤드를 둘러싼 오해도 짚었다. 씨앗이 사방으로 퍼진다는 이유로 씨방을 모두 잘라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씨앗이 퍼져 나가게 하는 것 자체가 씨방을 남겨 두는 핵심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여지는 충분하고, 지켜보며 관찰할 시간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런 위대한 거장들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 큰 행운"이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식물의 시듦은 설계의 결함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라는 반박도 잇따랐다. 아우돌프 역시 미국 PBS와의 인터뷰에서 겨울 경관이 각별히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주간지 『스펙테이터(The Spectator)』가 그를 두고 '갈색도 색이라는 사실을 영국 왕립원예협회(RHS)에 설득한 디자이너'라고 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정원 애호가는 루리 가든과 네덜란드 싱어르 라런(Singer Laren)이 살아 있는 인상주의 회화 같다며, 겨울 정원에 홀로 선 검은 꽃대 하나면 충분하다고 적었다.

사계절 내내 화사해야 한다는 요구가 오히려 위험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언제 보아도 예쁜 정원만 고집하다 보면 결국 정원사와 디자이너는 대중의 입맛에 맞는 결과물만 내놓으라는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한 댓글은 영국 넵(Knepp)의 정원 팀이 '온통 죽은 식물뿐'이라는 혹평에 "바로 그게 우리의 자랑"이라고 답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식물이 쉬어가는 휴면기의 경관에도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의견이 뒤따랐다.

아우돌프가 남긴 유산을 하나의 스타일로만 볼 수 없다는 평가도 많았다. 그는 정원을 진지한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형태가 자연스럽고 생육이 강건한 식물을 묘목 시장에 널리 보급했다. 실제로 아우돌프는 1982년 네덜란드 훔멜로(Hummelo)에 자리를 잡고 직접 묘포장을 운영하며 새로운 설계를 시험했고, 지금 현장에서 널리 쓰이는 숙근초 품종들을 그곳에서 길러냈다. 루리 가든 측도 그가 식물의 내구성과 수명을 기준으로 식물을 고르며, 지속적인 토양 개량이나 약제 살포가 필요한 까다로운 식물은 쓰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수목이 없다는 비판도 실제 기록과는 거리가 있다. 하이라인 설계에서는 교목과 관목이 핵심 골격을 이뤘고, 루리 가든의 2017년 자료에도 교목과 관목 26종을 포함해 222종이 넘는 식물이 올라 있다. 이 때문에 옹호론자들은 문제의 원인이 아우돌프의 정원 자체가 아니라, 공간의 맥락을 무시한 채 초본 식재 방식만 떼어다 옮겨 심은 모방작에 있다고 본다. 한 조경가는 아우돌프의 작업을 두고 '그대로 따라 해야 할 지침이 아니라 영감'이라고 정리했다.

보완하려는 움직임

논쟁과 별개로 현장에서는 이미 이런 한계를 메우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가장 보편적인 해법은 봄에 일찍 피는 구근 식물을 섞어 심는 것이다. 루리 가든은 개장 초기 네덜란드 디자이너 자클린 판데르클루트(Jacqueline van der Kloet)의 구근 설계를 더해 봄철의 빈자리를 메웠다. 2006년 가을에 6만 구, 2008년 가을에 4만 2천 구를 일일이 손으로 심었다.

정원을 시대에 맞춰 다시 설계한 경우도 있다. 영국 왕립원예협회는 위슬리 가든(RHS Garden Wisley)에 2000년 아우돌프가 조성한 긴 띠 모양의 화단(보더)을 20여 년 만에 철거하고, 그에게 다시 설계를 맡겼다. 2024년 봄 새로 문을 연 정원에는 총 3만 6천 본을 심었는데, 관상 가치는 물론 기후변화 적응력과 생태적 가치를 기준으로 고른 117종을 들였다. 옛 화단 양옆을 가로막던 방풍림과 관목은 걷어냈고, 일자형 동선을 따라 스쳐 지나가던 공간은 걸음을 멈추고 둘러볼 수 있는 섬 형태의 화단(아일랜드 베드)으로 바꿨다.

관리 방식을 바꿔가는 곳도 있다. 하이라인은 문을 연 뒤 15년 넘게 꾸준히 자생종 비율을 높이고, 베어낸 식물 잔해를 퇴비로 되돌리는 순환 관리를 이어왔다. 킹스버리가 강조했듯 목본 식물의 역할에 다시 주목하는 흐름도 뚜렷하다. 영국 잡지 『컨트리 라이프(Country Life)』의 한 정원 칼럼은 모든 정원에 관목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인식이 천천히 퍼지고 있다고 전하며, 야생 관목 군락에서 식재 원리를 찾은 책 『Shrouded in Light』(케빈 필립 윌리엄스·마이클 귀디 공저, 2024)를 소개했다.

긴 댓글 논쟁의 끝자락에서 한 정원사는 지난날 자신이 식물의 색만 좇느라 정작 형태는 보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제는 봄에 돋는 새순과 여름의 풍성한 형태, 가을의 색채, 겨울의 단단한 골격을 차례로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며, 결국 어떤 정원을 바랄지는 저마다의 취향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에 나온 식물

정원과 조경, 그 사이에서 발견하는 초록을 발견합니다.
정원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글쓴이

정원에서 보내는 편지, 가장 먼저 받아보세요

매거진 그린이 엄선한 정원 이야기와 식물 리뷰를 매주 이메일로 전해드려요.

신청되었습니다. 매주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신청에 실패했습니다.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뉴스레터 신청 안내 이미지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 X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