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이야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엇을 보여줄까가 아니라 누구의 이야기를 들을까였다. 정원은 결국 땅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미 정원에 관한 말들이 넘친다. 화려한 사진, 완성된 결과, 매끄러운 문구들이 매일 쏟아진다. 그러나 그 사진 뒤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글은 드물다. 정원은 늘 결과로만 전시되고,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이 지나온 시행착오와 사유는 지워진다. 우리는 그 지워진 자리에 서 보기로 했다.
이 에디션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정원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정원을 사유하는 사람. 손으로 땅을 일구는 이도 있고, 정원 앞에 가만히 앉아 그 의미를 되짚는 이도 있다. 우리는 이 둘을 가르지 않는다. 만드는 일과 사유하는 일은 본디 하나의 몸에서 나온 두 개의 손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삽을 들고, 어떤 이는 펜을 들 뿐, 둘 다 정원을 대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정보를 찾는 일도, 만드는 일도 쉬워진 시대다. 몇 마디 말로 그럴듯한 글 한 편을 얻을 수 있고, 어떤 소식이든 순식간에 복제되어 퍼진다. 그래서 오히려 되물어야 한다. 이렇게 쉬워진 시대에 뉴스는 무엇을 위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그것을 읽는가. 정보가 흔해질수록 정보 그 자체는 가벼워진다. 결국 남는 것은 그 정보 뒤에 누가 서 있었는가, 어떤 사람이 어떤 눈으로 그것을 골라내고 전했는가이다. 우리는 그 사람의 자리를 지우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이 지면은 사람에서 시작해 바깥으로 넓어진다. 한 사람의 정원 이야기는 그가 몸담은 업계의 뉴스로 이어지고, 그의 시행착오는 다른 이에게 필요한 정보가 되고, 그의 실천은 눈에 보이는 프로젝트로 남는다. 뉴스와 정보와 프로젝트는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누군가의 손끝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이 에디션의 순서는 늘 사람이 먼저고, 그 다음이 그가 남긴 것들이다.
이름을 정직하게 부르는 일도 결국 사람을 존중하는 일이다.
독자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하나뿐이다. 이 페이지들을 통해 어느 정원사의 손을, 어느 사유하는 이의 눈을 마주치게 되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의 이야기 또한 이곳에 담기기를.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다른 한 사람에게 가닿고, 그렇게 이 지면이 여러 목소리가 모이는 공론장으로 넓어지기를. 정원은 결국 그것을 만들고 바라본 사람의 이야기이므로.
이제 문을 연다. 사람에서 시작해서, 하나씩.
정원 이야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엇을 보여줄까가 아니라 누구의 이야기를 들을까였다. 정원은 결국 땅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미 정원에 관한 말들이 넘친다. 화려한 사진, 완성된 결과, 매끄러운 문구들이 매일 쏟아진다. 그러나 그 사진 뒤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글은 드물다. 정원은 늘 결과로만 전시되고,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이 지나온 시행착오와 사유는 지워진다. 우리는 그 지워진 자리에 서 보기로 했다.
이 에디션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정원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정원을 사유하는 사람. 손으로 땅을 일구는 이도 있고, 정원 앞에 가만히 앉아 그 의미를 되짚는 이도 있다. 우리는 이 둘을 가르지 않는다. 만드는 일과 사유하는 일은 본디 하나의 몸에서 나온 두 개의 손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삽을 들고, 어떤 이는 펜을 들 뿐, 둘 다 정원을 대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정보를 찾는 일도, 만드는 일도 쉬워진 시대다. 몇 마디 말로 그럴듯한 글 한 편을 얻을 수 있고, 어떤 소식이든 순식간에 복제되어 퍼진다. 그래서 오히려 되물어야 한다. 이렇게 쉬워진 시대에 뉴스는 무엇을 위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그것을 읽는가. 정보가 흔해질수록 정보 그 자체는 가벼워진다. 결국 남는 것은 그 정보 뒤에 누가 서 있었는가, 어떤 사람이 어떤 눈으로 그것을 골라내고 전했는가이다. 우리는 그 사람의 자리를 지우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이 지면은 사람에서 시작해 바깥으로 넓어진다. 한 사람의 정원 이야기는 그가 몸담은 업계의 뉴스로 이어지고, 그의 시행착오는 다른 이에게 필요한 정보가 되고, 그의 실천은 눈에 보이는 프로젝트로 남는다. 뉴스와 정보와 프로젝트는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누군가의 손끝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이 에디션의 순서는 늘 사람이 먼저고, 그 다음이 그가 남긴 것들이다.
이름을 정직하게 부르는 일도 결국 사람을 존중하는 일이다.
독자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하나뿐이다. 이 페이지들을 통해 어느 정원사의 손을, 어느 사유하는 이의 눈을 마주치게 되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의 이야기 또한 이곳에 담기기를.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다른 한 사람에게 가닿고, 그렇게 이 지면이 여러 목소리가 모이는 공론장으로 넓어지기를. 정원은 결국 그것을 만들고 바라본 사람의 이야기이므로.
이제 문을 연다. 사람에서 시작해서, 하나씩.

정원 이야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엇을 보여줄까가 아니라 누구의 이야기를 들을까였다. 정원은 결국 땅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미 정원에 관한 말들이 넘친다. 화려한 사진, 완성된 결과, 매끄러운 문구들이 매일 쏟아진다. 그러나 그 사진 뒤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글은 드물다. 정원은 늘 결과로만 전시되고,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이 지나온 시행착오와 사유는 지워진다. 우리는 그 지워진 자리에 서 보기로 했다.
이 에디션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정원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정원을 사유하는 사람. 손으로 땅을 일구는 이도 있고, 정원 앞에 가만히 앉아 그 의미를 되짚는 이도 있다. 우리는 이 둘을 가르지 않는다. 만드는 일과 사유하는 일은 본디 하나의 몸에서 나온 두 개의 손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삽을 들고, 어떤 이는 펜을 들 뿐, 둘 다 정원을 대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정보를 찾는 일도, 만드는 일도 쉬워진 시대다. 몇 마디 말로 그럴듯한 글 한 편을 얻을 수 있고, 어떤 소식이든 순식간에 복제되어 퍼진다. 그래서 오히려 되물어야 한다. 이렇게 쉬워진 시대에 뉴스는 무엇을 위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그것을 읽는가. 정보가 흔해질수록 정보 그 자체는 가벼워진다. 결국 남는 것은 그 정보 뒤에 누가 서 있었는가, 어떤 사람이 어떤 눈으로 그것을 골라내고 전했는가이다. 우리는 그 사람의 자리를 지우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이 지면은 사람에서 시작해 바깥으로 넓어진다. 한 사람의 정원 이야기는 그가 몸담은 업계의 뉴스로 이어지고, 그의 시행착오는 다른 이에게 필요한 정보가 되고, 그의 실천은 눈에 보이는 프로젝트로 남는다. 뉴스와 정보와 프로젝트는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누군가의 손끝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이 에디션의 순서는 늘 사람이 먼저고, 그 다음이 그가 남긴 것들이다.
이름을 정직하게 부르는 일도 결국 사람을 존중하는 일이다.
독자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하나뿐이다. 이 페이지들을 통해 어느 정원사의 손을, 어느 사유하는 이의 눈을 마주치게 되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의 이야기 또한 이곳에 담기기를.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다른 한 사람에게 가닿고, 그렇게 이 지면이 여러 목소리가 모이는 공론장으로 넓어지기를. 정원은 결국 그것을 만들고 바라본 사람의 이야기이므로.
이제 문을 연다. 사람에서 시작해서, 하나씩.